한국 고대 건축과 조형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조 유산입니다. 경주 불국사 경내에 나란히 서 있는 두 탑은 형태와 조형미, 담고 있는 불교적 의미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한국 건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쌍탑 구조로 손꼽힙니다. 본 글에서는 석가탑과 다보탑 각각의 특징과 예술적 가치, 상징성에 대해 살펴보고, 왜 이 두 탑이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문화유산인지 알아봅니다.
석가탑: 단아하고 절제된 한국적 미의 결정체
석가탑은 불국사 대웅전 앞 마당 오른편에 위치한 삼층 석탑으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된 탑으로도 유명합니다. 높이는 약 10.75m이며, 전체 구조는 단정하고 단아하며 과장됨이 없습니다. 전통적인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대표하며, 단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각 층은 정사각형 평면을 바탕으로 점점 작아지는 형태로 축조되어 안정감과 비례미를 자아냅니다.
석가탑의 가장 큰 특징은 ‘단순함’ 속에 깃든 고요한 아름다움입니다. 과한 장식 없이 깔끔한 선과 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치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듯한 정제된 조형미가 돋보입니다. 석재 자체의 물성을 살리면서도 불교적 신성과 상징성을 극대화한 이 탑은 “비움의 미학”이라는 한국 미술 고유의 개념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예입니다.
문화재청의 설명에 따르면 석가탑은 751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시대까지도 손상이 거의 없는 상태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특히 1966년 해체 보수 시에 세계 최고(最古)의 목판 인쇄물로 알려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내부에서 발견되면서 학계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이로 인해 석가탑은 단순한 조형물을 넘어, 인쇄문화사와 불교 전파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복합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다보탑: 화려한 상징성과 이례적인 구조
석가탑이 절제된 조형미를 대표한다면, 다보탑은 그와 반대로 장식적이고 이례적인 구조로 유명합니다. 석가탑의 왼편에 위치한 다보탑은 높이 약 10.4m이며, 전체적으로 매우 독창적이고 상징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보탑은 『법화경』에 등장하는 다보여래의 상징물로, 석가모니와 다보불이 나란히 법을 설하는 모습을 구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보탑은 구조적 측면에서도 매우 특이한 양식을 보여줍니다. 중앙 기단 위에 4개의 기둥이 세워지고, 그 위에 지붕처럼 생긴 돌덮개가 놓이며, 상단에는 다시 작은 탑신이 이어지는 복잡한 구조입니다. 일반적인 삼층 석탑 구조를 따르지 않으며, 그 기하학적인 배열과 조형미는 한마디로 ‘석조 건축의 예술적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식적인 요소 또한 매우 풍부합니다. 섬세한 조각 기법과 다채로운 형태는 당시 석공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며, 마치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는 듯한 정교함이 특징입니다. 다보탑은 신라의 불교문화가 얼마나 깊이 있는 사상과 예술을 융합해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결정적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다보탑은 외래 문화의 영향을 반영한 흔적도 보여줍니다. 일부 학자들은 다보탑의 구조가 중앙아시아나 인도 불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분석하기도 하며, 신라가 국제적인 문화 교류 속에서 창의적인 예술을 발전시켜 나갔음을 시사합니다.
쌍탑 배치의 철학: 좌우의 조화, 불교의 교리 반영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이 쌍으로 배치되어 있는 점은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닌, 깊은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석가탑은 ‘석가모니의 진리’, 다보탑은 ‘다보불의 증언’을 상징하며, 이는 『법화경』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과거와 현재, 진리의 전승’이라는 개념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런 배치는 불교 교리와 철학을 건축물로 구현한 매우 드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쌍탑은 또한 동양적 균형과 조화를 상징합니다. 좌우가 명확하게 대비되면서도 서로를 완성시키는 구조는, 불국사 전체 배치의 핵심이자 조화로운 세계관을 상징합니다. 이처럼 석가탑과 다보탑은 서로 대비되는 조형성과 상징성을 가지면서도, 하나의 세계관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예술성과 종교성이 동시에 집약된 기념비적 건축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구조는 후대의 한국 사찰 건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사찰들이 쌍탑 구조를 모방했으며, 한국 불교 건축에서 ‘탑의 의미’가 단순한 장식이 아닌 교리의 구현이라는 관점을 널리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징적 배치는 당시 신라인들의 높은 철학적 사고와 예술적 통찰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결론: 한국 고대 예술의 정수, 세계적 가치로 자리 잡은 두 탑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은 단순한 사찰 건축물이 아니라, 한국 고대의 정신문화, 불교철학, 조형예술이 융합된 상징적 구조물입니다. 절제와 장식, 단순함과 복잡함이 공존하는 이 두 탑은 동양 건축의 미학을 대표할 뿐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두 탑은 전 세계 수많은 학자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며, 한국 문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역사로 남아 있습니다. 불국사 쌍탑을 통해 우리는 한국 고전 예술의 정수를 마주할 수 있으며, 그 가치를 계승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